오후 세 시
김상미
오후 세 시의 정적을 견딜 수 없다
오후 세 시가 되면 모든 것 속에서 내가 소음이 된다
로브 그리예의 소설을 읽고 있을 때처럼
의식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라 주변을 어지럽힌다
낮 속의 밤
똑 똑 똑
정적이 정적을 유혹하고
권태 혹은 반쯤은 절망을 닮은 멜로디가
문을 두드린다
그걸 느끼는 사람은
무섭게 파고드는 오후 세 시의 적막을 견디지 못해
차를 끓인다
너 또한 그러하다
부주의로 허공 속에 찻잔을 떨어뜨린다 해도
순환의 날카로운 기습에 눌려
내면 깊이에서 원하는 대로
차를 마실 것이다
공약할 수도 훼손시킬 수도 없는
오후 세 시의 적막
누군가가 일어나 그 순간에 의탁시킨
의식의 휴유증을 턴다
그러나 그건 제스처에 불과하다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읽고 있던 책의 한 페이지를 덮을 때처럼
뚝딱 뚝딱 뚝딱
그렇게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정적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정적 또한 지나간다
흐르는 시간의 차임벨소리에 놀라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우리 자신의 내부,
그 끝없는 적막의 두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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