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송종규
달걀하고 커피하고 자두를 사러갔는데 노란버스가 신호등을 방금 통과해 갔는데 매미소리가 진동하는 팔월의 주말 엿가락처럼 늘어진 생각들이 자작나무를 올라타고 앉았는데 나는 에드벌룬처럼 둥둥 공중으로 떠올랐는데 어느 해 여름인지 감자 찌는 냄새가 자욱했는데 나는 매케한 햇살을 눈꺼풀 밖으로 털어냈는데 어느 여름 눈부신 하루 해가 덜컥 공중에 걸렸는데
자, 달걀하고 커피하고 자두를 사러가자 신호등 앞에서 자작나무 그림자가 뚝 멈춰 섰는데 누군가 솟구치고 누군가 태양 속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백설기처럼 말랑한 말들이 구름을 부풀어 올렸는데 구름의 발목에서 물방울 같은 것이 반짝하고 사라졌는데
자 이제, 달걀하고 커피하고 자두를 사러가자 달걀하고 커피하고 자두하고 12시가 시들기 전에 독배처럼 향기로운 정오의 커피를 끓이러 가자 물방울 같은 말들이 반짝하고 사라지기 전에 자작나무 숲을 건너가자 신호등을 부수고 가자
달걀하고 커피하고 자두를 사러갔는데 다리 한 쪽이 덜컥 자작나무 꼭대기에 걸려있었는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정오의 햇살이 자욱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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