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비가 와도 젖은 자는/오규원

상담사 이우 2013. 11. 20. 19:00

비가 와도 젖은 자는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