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庚子年/독서일기_2020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1일_첫번째 이야기

상담사 이우 2014. 1. 22. 23:50

1. 처음 만난 이와 사귀고 싶을 때, 그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떤 대목을 들려주겠습니까? 왜 하필 그 대목인지 적으세요.

 

 

1988년, 겨울입니다. 그 겨울은 유난히 춥고 쓸쓸하고 하늘만큼 외로운 계절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저는 하루 종일 책을 읽습니다. 읽다가 지치면 잠을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둔 책을 읽습니다. 그것도 소설 전집을 읽었습니다. 제3세대 한국문학이란 제목이었지요. 김원일, 이문열, 한승원, 황석영 등. 햇살이 따스하게 창가에 내려오면 담배를 피웠지요. 투명하게 피어나는 연기는 황홀했지요. 한참을 바라보다 재떨이에 눌러 꺼지요. 두껍게 쌓이는 재의 지층들은 묵묵히 ‘시간’을 버텨 갑니다. 막상 졸업을 하고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할지 몰랐지요. 그때는 대학에 간다는 생각이 없었지요. 그냥 일하다 돈 생기면 타지에 가고 싶었지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시계처럼 살고 싶었지요. 똑딱똑딱…추처럼 일하고 침묵하고 고독해하면서 그날그날 빈 공책에 근사한 시 한편이라도 적으며 살고 싶었지요. 그런 무위의 날을 그리워했지요. 그럴 때 한 놈이 공장에 갔지요. 자기는 노동자로 일한다며 출근하기 시작했지요.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이 공장일도 아니고, 공사판 일용직도 아니고, 그저 근처 호프집에서 서빙을 했지요.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면 자정 지나 일을 마쳤지요.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간간히 손님들이 팁으로 만원씩 주곤 했지요. 그때 짜장면값이 천원정도 했지요. 책 값은 사천원 정도, 문지판 시집은 이천원 정도 했지요. 솔은 오백원, 그러니 돈 만원이면 참 큰 돈인데, 하루에 한 두 번씩은 손님들이 팁으로 만원씩 줬지요. 그때 아는 여자아이는 학원에서 칵테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요. 근사한 색깔의 담배를 피우곤 했지요. 집 나와 혼자 자취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연락했는지 모르지만, 몇 번 만났지요. 주로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요. 그는 고아였기에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지요.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지요. 책과 몽상, 시와 오기, 청춘과 괴리, 이런 어쭙잖은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지요.

 

 

왜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을까요, 고등학교 졸업이후가 내가 성인이 되고 내 삶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작정 놓여진 시간 앞에서 무심히 흔들리는 삶을 그저 막연히 바라보던 그 순간을 최초로 기억하기 때문일까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내 십대의 마지막 날들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