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버스
유희경
순간, 나는 숲과 길을 생각했다 길이 숲으로 나 있는 것인지 숲을 통
과하는 것인지 숲이 내놓은 것인지 더듬대는 동안
길 위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한 사람이 내렸다 비가 내리면 길은 자
꾸 운다 기댄 사람은 더 기댈 곳이 없다 전단지 같아
여기는 지친 버스 길은 여전히 길이고 숲은 길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이
내린다 나는 무관하다 그러니 자꾸 마음이 아프다
길은 울지 않았다 울지 않았지만 젖었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전단지 같아 나는 길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한 사람은 올라타고
아니, 이곳은 음악이다 웅장한 것은 늘 그렇게 묘사되곤 하니까 애써
생각한 숲과 길이 지워져가고 한두 번쯤은 덜컹거리는 법 그리고 나는
자꾸 조용한
이쯤에서 내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나쁘지 않겠지만 지친
버스, 속으로 온통 전단지 같은 것들만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곳은 음악이다, 라는 정의는 실수다 지워진 것은 언젠가 다시 줍게
마련 더 이상 나는 숲과 길의 정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단지는
그것은 좀 다른 일이지 아니라면 우리가 지친 버스를 타고 가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방금 탄 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린 사람도 역시
나는 어디에 앉아 있는 것일까 한번쯤은 전단지 같아도 괜찮아 한 명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엉거주춤한 자세가 살아가는 동안 그 까마득한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지친 버스는 언제쯤 끝
나는 것일까 내린 사람들의 안부가 몹시 궁금하다 나는
[감상] 그냥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지친 버스라니...은유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버스에 기대어 전단지처럼 지쳐있다. 숲도 길도 생각지 않는다. 그저 언제쯤 내릴까 궁금하다. 나도 요즘 치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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