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庚子年/독서일기_2020

상처 떠나보내기_2/이승욱 지음

상담사 이우 2020. 8. 6. 22:30

매번 이야기를 통해 대입되는 감정들이 있다. 그것을 그냥 넘겨버려서는 안될 것 같다. 조금 더 힘을 내야 한다. 그리고 가만 지켜보고 어디에 다다를 것인지 숨죽이고 있다. 그건 내 감정의 앙금이다. 

세번째와 네번째의 이야기...우울의 위장인 분노, 그리고 외로움...

 

그래서 다시 출발선상에 선 느낌이다. 이전 상담의 진행형.....더 복잡하고 헝클어진 채 꼬여버린 어떤 것들.....바로 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네번째 이야기 누락된 자의 슬픔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로부터도 말 걸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164) 분석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삶의 축을 형성한 경험을 스크린에 상영하듯 의식에 떠올리며 그 영향력을 통렬히 깨닫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녀는 뜨겁지만, 스스로 훨훨 타는 열정이 아니라 사그라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불길같다."

 

(172) 꿈은 현재 경험하는 우리의 심리적 고난을 표현할 때, 결코 뜬금없는 소재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과거의 고난에서 중요한 모티브를 가지고 와서 현재의 고난을 이야기한다. 

 

(178) 융이 누차 당부했듯이 분석과정은 변증법적이고, 그래야만 한다. 분석가가 아는 답을 내담자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식은 분석가와 내담자가 함께 내담자의 과거 경험을 연상하고 그 의미를 분명히 이해한 후 내담자가 그 경험을 수요해서 자기 삶의 자원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180) 꿈에서 그녀가 화장실에 가지 못한 것은, 갖고 있어서는 안될 감정들을 다 배설해내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배설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물론 그녀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배설하고 싶은 주된 감정은 무엇일까?

 

(187) 미영씨가 우는 동안, 나는 그녀가 외롭지 않게 울도록 잘 지켜보고 있었다. 혼자 울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존재감이 드러나진 않되 존재함을 느낄 수 있도록 단 한 번도 눈길을 떼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189)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게 숙련된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하고,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 행위를 통해 그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최소한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내 진심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박차고 나가버릴 것이다. 

 

(193) 나의 경험을 통과해서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해 진정성의 농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먼저 느끼고, 내담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감지한다. 

 

(196) 나는 거의 무조건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느끼는 불만을 전적으로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이날은 그렇게 하기 불편했다. 

 

(203)"뭔가 빠진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내 질문에 미영 씨는 아무런 대답 없이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누락된 존재! 그래, 가족 안에서 그녀는 누락된 사람이었다. 아들이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고, 농사일과 집안일로 너무 바쁜 엄마는 그녀를 돌볼 틈이 없었다. 사계절 찬란한 그날에 그녀는 눈이 아플 정도로 찬란한 외로움 속에 누락된 채 내던져져 있었다. 

 

(204) 그 버려짐의 기억, 방치된 아이의 막막함, 아무에게도 인지되지 않은 비존재감의 영토, 그 안으로 입국할 때의 두려움이 나를 낙아섰던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녀의 분노가 제대로 이해되었다. 두려움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두려움만큼 분노의 직접적인 원인은 없다. 

 

(205)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경험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괴로움의 원인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 붙박아 있던 자기 자신을 만나고 미뤄왔던 삶의 과정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209)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분석가 앞이기에 누락된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분석가)은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내담자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결국에는 분석가를 신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211) 퇴행은 바로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나겠다는 것, 결핍이 발생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무의식적 행위다. 퇴행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제 다시 시작했다는 뜻이다. 더욱 건강한 퇴행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함으로써 시작된다. 

 

(217)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그들과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오히려 헛헛한 가정을 느낄 때가 있다. 외로움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심심함과 외로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이란, 내가 말할 대상이 없는 데서 비롯된 상처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도 말 걸어지는 대상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말 걸어지는 대상이라는 것은, 존재감의 확인이다. 

 

다섯번째 이야기 마음이 가난한 자 

"도대체 부모님과 그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폭력적 권위로 인해 상처받고 좌절한 경험이었다. 착한 이웃집 소년 같은 여린 심성은 어른들의 폭압으로 인해 주눅 들고 낙담했다."

 

(223) 의식 세계의 방어로 인해 심리적 현실은 종종 흘려보낼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그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바로 꿈을 통해서다. 

 

(240) 분석이 치유적 효과가 있으려면......사실은 그의 무의식이 말을 해야 한다. 말이 억지로 나오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방어벽에 균열을 일으켜 억압된 경험들이 술술 새어 나오도록  해야한다. 그렇다고 의식의 방어벽을 일거에 무너뜨리면 안된다. 

 

(242) 물론 어머니가 그에게 베푼 사랑이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기억하는' 사랑은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2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무기력과 거짓 자백의 수치심은 물론, 증오심과 폭력의 충동을 절대로 느껴서는 안 된다. 자식은 그래서는 안 되니까. 그랬다가는 또 다른 죄책감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 그는,  그리고 어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했다. 

 

(252) 나는 그의 삶이 얼마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지, 그가 자각하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무의식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사는지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먼저 깨달아야 했다. 

 

(264) 우리는 대체로 가능하면 고통을 빨리 잘아내고 싶어 한다. 어떤 고통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삶의 핵심과 관련된 고통일수록 단박에 잘라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266) 또  하나는 자기의 실존의 어떤 모습인가를 생생하게 감촉하는 것이다. 자기 삶을 장식하는 모든 형용사와 명사를 제외하고 남는 단 하나, 그것이 바로 실존에 대한 처절한 감각이다......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만, 결국 비존재의 두려움은 자신을 규정하는 명칭과 자신을 동일시하려 함으로써 우리를 불행의 굴 속으로 집어넣어 버린다. 

 

(맺음말) 나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했으면 한다. 힘들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밑바닥까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