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중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위해 뉴질랜드 간 작가의 심리치료 경험 이야기.
심리치료사로 10여년간 뉴질랜드 정신병원에서 근무한 후 한국의 서울에서 닛부타의 숲이라는 상담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관계'와 '화두' 를 가슴에 깊이 안고, 내담자를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내담자와의 분석은 네게 단순한 돈벌이로서의 전문적 활동이 아닌 삶의 본질과 접촉하는 일임을 깨닫고 다섯 내담자의 만남과 치유, 그리고 분석을 통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레슬러의 사랑
"내가 완전히 받아들여져 본 적이 있던가. 아무런 사심 없이, 편견 없이, 의도 없이 온전하게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이 있던가. 우리들의 고통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 인해 생겨난 것인지 모른다."
(46)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라 공간이 아닐까요? 경계는 오직 하나의 선이어서 바로 눈닾에두고도 넘어갈 수 없게 하는 장벽, (투명한) 차단막입니다. 따라서 경계는 관계의 균열입니다. 하지만 관계 사이의 공간은 공명을 가능하게 하죠. 공간은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때로는 물리적인) 영역이고, 그것은 사생활의 존중이라는 방식으로, 또는 정서적 여유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또는 특수한 환경으로서 공간의 제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무엇일까?..
(47) 단정적인 말투는 갈등을 불러온다. 단정적인 태도 역시 갈등을 일으킨다. 대화의 행간에 여유가 있고, 관계에 공간이 넉넉하다면 부딪혀서 불꽃이 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녀나 배우자나 친구들을 대하는 자신의 말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의견을 개진하는지, 그리고 그런 태도가 상대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관찰해보면 좋겠다.
(48) 말할 때나, 감정교류를 하고자 할 때 우리는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가 내게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그의 감정이 자유롭게 전해질 수 있도록 채근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내 기분대로 해주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56) 130키로그램, 거구의 서양 여인. 심각한 경계선 성격장애로 인한 고통,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신체적 결함, 불우했던 어린 시절, 그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제니스는 그것들과 작별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그 경험을 끄집어내 낱낱이 살펴보고 위로하고 수용하고 떠나보냈다.
두번째 이야기 스스로를 없앤 청년
"우리 삶에는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재난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재난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가? 어떻게 그것을 삶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바꿀 수 있을까?
(71) 많은 내담자들이 무의적 의도를 가지고 분석가를 시험하고 자기의 패턴 안으로 분석가를 복속시키려는 행위를 한다. 이런 일은 상담 초기에, 특히 첫 세션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그의 말은 '내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지 당신(분석가)이 납득시켜 달라.'는 요구로 들렸다.
(73) 2년 전, 그는 여행을 하다가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냈고, 그 사고로 두 다리의 기능을 잃었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와 한껏 젊음을 만끽하고, 세상이 좁다는 듯 활개 치며 돌아다닐 나이에 두 다리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해버린 것이다.
(76) 약간이라도 무거운 주제로 옮겨 갈라치면 그는 여지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흡사 흐르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팍팍한 모래강과 같았다. 그와 나 사이를 구획하고, 도무지 도강을 허락하지 않는 모래강 같았다.
(79) 그의 '불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이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이 사람'을 보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 말자. 만약 그에게 상처가 된다면 솔직하고 진중하게 사과하면 된다.'
(83) 그날 나는 뭔가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불안, 불편함에 대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말문을 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도전에서 비롯되었다. 분석가가 마음을 여는 만큼 내담자도 연다. 분석가의 발이 내딛은 만큼 내담자도 걷는다.
(101) 내담자의 말 중에서 유독 귀를 찌르는 단어나 문장들이 있다. 그것을 단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내담자의 무의식을 한 번 더 자극하는 효과는 충분하다.
(102) 나는 종종 그러하듯 집요하게 그의 느낌과 감정을 물었다. 우리가 분석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은 감정이다.
(103) 심지어 라캉은 "내담자들은 변화하기 위해 분석을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분석가에게 온다."고까지 말한다. 그저 고통을 계속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써 분석가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라캉은 계속 말한다. "내담자가 정말 변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내담자는 진정한 분석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진정한 결심, 과거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변화의 결심, 이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은 해결된다."
(104) 고통으로부터 받는 희열이 없다면, 또는 그 희열이 더 이상 희열이 아님을 인식학게 될 때, 즉 고통을 완벽한 고통으로만 인식하게 될 때, 그 고통을 버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래서 고통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사실 고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도사리고 있는 작은 쾌락을 버리겠다는 의미다.
(107) 하지만 정작 우리가 애도한 것은 그의 오래된 자신, 변화하지 않으려는 과거의 자신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 구원받기를 원하는 여자
(119) 그를 사랑하기에 남편으로 맞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편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믿는 것이다. 또는 이 둘을 구분하기 모호한 부부들도 적지 않다. 결혼을 통해 구원받기를 원하는 여자들은 고유한 한 남자,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132) 나는 그럴 자신도, 그럴 자격도 없지만 최소한 내 앞에 앉은 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할 자신도 없다. 침묵 속에서 나는 그녀의 고통을 같이 느꼈다.
(134) 누군들 자기 존재를 부모에게 완전히 환영받고, 진정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받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태생적으로 완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도 많다. 그들은 평생 의문을 품고 살아간다. '나는 허락된 존재인가?'
(139) 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나는 채영씨에게 전화를 하든 이메일을 보내든 다시 나오라고 종용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윤리이다. 그녀가 만약 분석에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하지만 그것은 회복을 위한 과정이고, 내면의 성장과 통합을 위한 극복의 과정이다. 나는 그것을 요구할 것이고, 그것을 위해 내 권위를 사용할 생각이다.
(153) 분석가는 구원자가 분명 아니다. 분석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도 아니다. 자기 삶의 구원자는 자기 안에 있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154) 내담자가 스스로 감당하거나 처리해야 할 감정을 다하지 못했을 때 여지없이 그것은 분석가의 몫이 된다. 내담자의 혼이 아니라 내담자의 감정이 내 몸에 강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나의 것인지 내담자의 것인지 항상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때로 그것이 뒤섞이면 분석은 난항을 겪는다.
(156) 고통스러운 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고통 속에 도사린 작은 쾌락이나 마약 같은 만족이 가끔 단맛을 주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것이다.
(158) "내게는 왜 따뜻한 가정이 없나, 왜 그런 엄마 아빠가 없나. 그 생각을 하면 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어요. 이제 생각나요. 그때는 왜 열 몸살이 난 것처럼 몸이 부들거리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겠어요. 화였어요. 내게는 따뜻한 가정이 없다는, 그거예요."
(159) 과연 채영 씨는 해쓱한 모습으로, 그러나 청연한 얼굴로, 감히 말하자면 해탈한 얼굴로 나타났다. 밝고 맑은 얼굴이었다. 행동은 침착했고 표정은 산과 같았다. 이런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은혜로웠다.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피 같은, 진액 같은 땀을 한 말은 흘렸단다. 몸을 조금 추스른 뒤에는 산사에 가 삼천 배를 올렸다. 밤새워 절을 하고, 죽음 같은 밤을 새워 또 절을 했다. 절하다 쓰러지면 입술이 터지도록 앙다물고 다시 일어났고, 과거와 송별하려고 애썼다. 보내야 할 것들을 보내야 채워야 할 것들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천 배를 넘기자 갑자기 선현히 절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과 분리된, 그러나 동떨어지지 않은 자기, 완전히 객관화되었지만 또한 온전히 느껴지는 자기가 보이자 모든 것이 선연해지고 분명해지고 담담해졌다. 세상 속에 있는 자신이 보였다. 세상과 동떨어지고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것은 아직 몰랐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네번째 이야기 누락된 자의 슬픔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로부터도 말 걸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2020_庚子年 > 독서일기_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반야심경/야마나 테츠시 지음, 최성현 옮김 (0) | 2020.08.11 |
---|---|
상처 떠나보내기_2/이승욱 지음 (0) | 2020.08.06 |
남자로 산다는 것_마음에 남는 구절들 (0) | 2020.08.01 |
남자로 산다는 것/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0) | 2020.07.28 |
7월 3째주 대출도서 (0) | 2020.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