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마른 물고기처럼

상담사 이우 2013. 4. 16. 09:01

마른 물고기처럼

나희덕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빛나던 눈도 비늘도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장자(莊子)]의 ‘대종사(大宗師)’에서 빌려옴.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감상] 읽어내려가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는 구절에 잠시 눈이 머뭅니다. 그리고 숨을 참습니다.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이, 그 사랑이 나의 두려움임을 그리하여 자꾸 살기위해 서로 침을 뱉는 절박한 심정인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모호한 감정상태를 경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