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 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가 없어도 혼자 담배 피우는 밤은 오네
보르헤스의 책을 펼쳐놓고
<꿈의 호랑이들>을 읽는 밤은 오네
밤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닌데
깊은 밤 속에서
촛불로 작은 동굴을 하나 파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는 밤은 오네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겠지만
내 고독이 만드는 음악을
저 홀로 알뜰히 듣는 밤은 또 오네
한때 내가 사랑했던 그대,
통속소설처럼 떠나간 그대는
또 다른 사람 품에서
사랑을 구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무리 그대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 나는 아프네,
때로는 그대와의 한 순간이
내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줬으니
미안해하지 말게, 사랑이여,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이여
그대에 대한 짧은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멸을 지녔네
[감상] 사랑만큼 알 수 없는 감정도 없다.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 다르다. 내게 있어 사랑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사랑이 떠나고 난 뒤에도 내가 더 이상 당신으로 인해 아프지 않아 슬픔을 넘어 통증을 느낀다. 그러나 그 기억이 어디가겠는가? 사람은 추억으로 사랑을 되새김질하기도 한다. 사랑을 버릴수도, 영원히 가질수도 없는 이 한계여...그러나 짧은 기억만으로도 불멸을 가진 시인의 자각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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