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안도현

상담사 이우 2013. 5. 4. 13:38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안도현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 거

 

내 몸에 들어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광실 구름 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잔 마시러 가네

 

소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안을 때가 있네

 

[감상]아이들 캠핑간다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따뜻한 햇살에 몸이 다 눙실거린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와 견딜 수 없이 서러워지는 마음이나 그 마음을 소주로 달래는 기분이나...작고 보잘것 없어 천대받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 감정 같은 게, 사내를 서럽게한다. 날씨는 한없이 따뜻한데 마음은 자꾸 서러워지는 이 기분은 뭘까? 내게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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