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사막/신현정 바보사막 신현정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처음 낙타를 타본다는 것 허리엔 ..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4.01.03
다시 쓸쓸한 날에/강윤후 다시 쓸쓸한 날에 강윤후 오전 열시의 햇살은 찬란하다. 무책임하게 행복을 쏟아내는 라디오의 수다에 나는 눈이 부셔 금세 어두워지고 하릴없이 화분에 물이나 준다. 웬 벌레가 이렇게 많을까. 살충제라도 뿌려야겠어요, 어머니. 그러나 세상의 모든 주부들은 오전 열시에 행복하므로 ..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4.01.01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김왕노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 김왕노 이별이나 상처가 생겼을 때는 백년이 참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쓰린 몸에 감각에 눈물에 스쳐가는 세월이 무심하다 생각했습니다. 백년 산다는 것은 백년의 고통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상처고 아픔이고 슬픔이고 다 벗어버리고 어둠 속..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12.05
이탈한 자가 문득/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 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 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 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11.21
비가 와도 젖은 자는/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자는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11.20
책/김수영(金秀映) 책 김수영(金秀映)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지요. 까만 표지에 손바닥만한 작은 책이었지요. 첫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하지요. 바람도 잠든 숲속, 잠든 현사시나무들 투명한 물관만 깨어있었지요. 가장 크고 우람한 현사시나무 밑에 당신은 멈추었지요. 당신이 나무둥치에 기대자 비로소 ..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11.16
자작나무/송종규 자작나무 송종규 달걀하고 커피하고 자두를 사러갔는데 노란버스가 신호등을 방금 통과해 갔는데 매미소리가 진동하는 팔월의 주말 엿가락처럼 늘어진 생각들이 자작나무를 올라타고 앉았는데 나는 에드벌룬처럼 둥둥 공중으로 떠올랐는데 어느 해 여름인지 감자 찌는 냄새가 자욱했..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11.08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장정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장정일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10.23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이기철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이기철 창문은 누가 두드리는가, 과일 익는 저녁이여 향기는 둥치 안에 숨었다가 조금씩 우리의 코에 스민다 맨발로 밟으면 풀잎은 음악 소리를 낸다 사람 아니면 누구에게 그립다는 말을 전할까 불빛으로 남은 이름이 내 생의 핏줄이다 하루를 태우고 남은 빛이 ..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10.15
희망사진관/임동확 희망사진관 아직-아님으로서의 아님은 생성된 존재를 가로질러간다(에른스트 블로흐) 임동확 단지 그렇게 기억되고 있을 뿐 결국 방향이 없는, 그리하여 종말이 없는, 단 한 번도 인화되지 않은 것들이 추억일까 어느 정지된 순간에 대한 덧없는 집착이 희망의 정체였을까 서울 출장길 .. 행복한공부/상담사의 詩 읽기 2013.08.30